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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3대 명절 단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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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유명한 화가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이라는 그림이 있다. 국보로 지정된 이빨 그림은 만만 유명한 그림이라 한국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그림이다. 인적이 드문 산속의 냇가에서 저고리를 벗고 목욕을 하고 있는 여인들 게다가 나무에 그네를 걸고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 바닥에 앉아 쉬고 있는 여인들 그리고 여인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머리에 이고 여인들을 향해가는 아녀자 결국 여인들의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는 승려들이 그려져 있다. 이빨 그림은 제목에서 알 고갱이 있듯이 단오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풍속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단오는 우리 민족에 있어서 중요한 명절이었다. 우리 민족의 3대 명절을 꼽으면 설, 추석 더욱이 단오이다. 여기에 한식을 더하면 우리 민족의 4대 명절이라 한다. 이렇듯 우리 민족에게 단오는 모내기를 마치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며 동네잔치가 벌어지는 도무지 중요한 명절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단오를 어떻게 지냈을까? 미리 음식부터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명절 음식으로 떡을 빼놓을 운 없다. 단오에 유명한 떡은 수리취떡이다. 수리취는 엉겅퀴과의 풀로써 구설초라고도 불린다. 단오 무렵에 연한 잎을 맵쌀가루와 섞어 절편으로 만들어 먹었다. 또한 초여름에 맛이 상전 좋은 준치를 이용하여 준치탕을 끓여 먹었다. 당신 밖으로는 더운 날씨에 시원한 앵두화채를 더욱이 준치를 이용한 준치 만두, 수리취떡을 못하게 되면 망개떡이나 쑥떡을 만들어 먹었다. 우리는 추운 겨울철 설날에 설빔을 손해 입어왔듯이  단오 때는 단오빔을 해 입었다고 한다. 단오 때 온 가족이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차례를 지내고 단오 음식을 먹었다고 전해온다. 추운 겨울에 설빔을 마련했으니 더운 여름에 입을 단오빔을 마련해 입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집에서는 노인이나 어린아이에게만 옷을 해주었다. 그럼 단오 때는 무엇을 하였을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인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았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이유는 머리카락에 윤기를 주고 숱을 늘리며, 눅눅해진 장마철에 비듬이나 피부병이 생기지 않게 여름철 위해서였다. 과약 몸에 좋다고 해 예부터 창포 삶은 물을 먹기도 했다. 더구나 창포뿌리는 다듬어서 비녀로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여름에 사용하기 위하여 부채를 만들어 서로 선물하였다. 단오선이라 부르는 이윤 부채는 영호남에서 단오 때에 부채를 진상하면 임금은 대신들에게 부채를 나눠주고 대신들은 일가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런즉 풍습이 널리 퍼져 일반인도 서로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선물이다. 우리 선조들은 단오 때가 되면 다양한 놀이를 즐겼다. 그중 유명한 놀이로는 그네 타기, 씨름, 탈춤, 석전놀이 등이 있다. 이중 생소하게 들리는 석전놀이는 어떤 놀이인가?

석전놀이의 시초는 고구려 종종히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문헌에 고구려에서 석전놀이를 즐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석전놀이는 많은 사람들이 패를 나누어 강이나 큰길을 송도 리틀야구 핵심 두고 돌을 던져서 상대를 맞추는 돌팔매질이다. 무론 이익 놀이는 부상자가 극히 나왔다. 심지어는 사망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 임금은 전국적으로 이 석전놀이를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석전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신분의 차 나이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작 상대를 향하여 돌팔매를 할 뿐 억혹 돌팔매에 맞아 다쳐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석전놀이에 참석한 후 상처 없이 멀쩡히 돌아오면 가족들이 열심히 안 했다고 질책을 하였다고 한다. 석전놀이의 인기는 지금의 프로야구와 함께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마치 스포츠처럼 석전놀이가 열리는 장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구경을 하였다. 심지어 임금도 석전놀이를 구경하기 위하여 유명한 석전꾼들을 불러 싸우게 하고 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한양에서 유명한 석전놀이는 만리재와 아현의 석전놀이였다고 한다. 아현이 이기면 이해 농사가 풍년이라 믿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현을 응원했었다고 한다. 석전놀이 꾼들은 왜구토벌에도 동원됐었다. 왜구가 영남지방을 괴롭혔을 진지 조정에서는 석전꾼들을 선발하여 영남지방으로 파견하여 왜구를 상대로 돌을 던지게 끔 하였다고 한다. 석전놀이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현대 백성들에게 심히 재미있는 볼거리로 터 잡았다. 이자 외에도 많은 풍습이 있는 단오는 그렇게 우리 민족과 몇 천 년을 이어서 내려왔다. 시고로 풍습은 조선 후기 입장하다 시들해지고 일제강점기에 석전놀이 등을 금하여 아쉽게도 명맥이 끊겼다. 일제가 석전놀이를 금하게 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일제에 저항한 석전꾼 때문이었다. 너희 석전꾼이 원태우 지사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분개한 원지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수원역에서 서울역 행 기타를 탄다는 첩보를 듣고 지금의 안양 석수동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를 향하여 돌을 던졌다. 이 돌은 이토가 않아있는 창문을 방금 맞추었고 이토는 창문의 파편에 맞고 쓰러졌다고 한다. 기절한 이토의 얼굴에는 창문 파편 조각이 8군데나 박혀 있었다고 한다. 그리 원지사는 바로 체포되었다. 또한 열차 경기 방해죄로 징역 2개월에 태형 100대를 선고받았다. 이토 상해죄는 죄가 되지 않았는지 죄목에는 없었지만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니 일제가 석전놀이를 곱게 볼리가 없었다. 더구나 석전놀이 이외에도 줄다리기, 고싸움, 차전놀이 아울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풍습도 금하게 되었다. 일제는 사람들이 적잖이 모이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오와 함께 자기 풍습들도 차차로 백성들에게서 멀어지게 된 것이었다.

위기 단오는 강릉의 단오제가 국가무형유산 13호 이고 2005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 것인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놈 의미는 현 문화가 사라지지 않게 공식적으로 너 행사를 보존하자라는 의미이다. 그만치 우리 국민들의 머릿속에 단오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국민들이 아울러 다리 않는 문화유산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언제인가부터 우리의 젊은이들은 매년 10월 31일 이태원, 홍대 등에 모여 기괴한 분장을 하고 핼러윈데이를 즐긴다. 핼러윈 데이는 영국 캘트족이 매년 마지막 날 죽음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에서 유래됐고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봐 자신도 악령처럼 분장을 했다고 한다. 길미 풍습이 미국으로 전해지고 지금까지 10월 마지막 날 이면 기괴한 복장을 임계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도 군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유치원에까지 이날이 되면 행사를 한다고 한다. 당연히 외국의 문화도 우리가 즐길 행복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화는 잊어버리고 외국문화를 즐기는 현실이 편하지는 않다. 단오 풍습이라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정신에서 사라졌는데 문화유산으로 지정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단오 문화를 복원하기 위하여 단순히 일개 동우회 및 지자체 차원에서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아울러 할 생령 있도록 정부에서도 힘써야 할 것이다. 단오 행사와 풍습을 정부차원에서 복원하여 캠페인을 하고 장기적으로 어린이들에 대하여 교육해야 할 것이다. 수리취떡, 단오선, 석전놀이 등은 단오 풍습의 사회운동 아이템으로 나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단오에 대한 교육을 받고 체험과 같이 성장한다면 초초 단오에 대한 재인식을 할 행복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전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단오에 대한 문화도 복원이라는 것을 할 목숨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 형평성에 맞지 않는 석가탄신일이나 크리스마스를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단오, 제헌절을 공휴일로 할 중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이 정치적, 경제적 선진국에 진입하고 K-Pop, K-Drama, K-Movie, K-Food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더구나 세계인들은 한글을 배우기 위하여 한국어과와 한국어 학원이 아주 생겨나고 있다. 종시 한국의 문화가 세계에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금재 30년 전까지도 우리들은 우리는 선진국에 비하여 정치, 경제, 문화적인 측면에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없이 있었고 어떻게든 외국의 문화를 하여간에 답습하며 흉내를 내려하였다. 오히려 때문에 흉내를 낸 문화는 외국문화에 아류에 불가했던 것이고우리 문화만의 특성이 없었던 것이었다. 세계인들이 한국의 음악에 열광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부러워하고 한국의 음식을 맛보고 즐기고 있듯이 소유자 한국 다운 것이 세계에서도 인정받을 복 있는 것임을 알 생령 있다. 그러므로 잊혀진 우리 문화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그것이 타의에 의하여 소멸된 우리의 풍습이라면 복원하여 재차 한번 느끼고 즐길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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